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만슈타인 (문단 편집) ==== [[우크라이나]] 우안에서의 패배 ==== 쿠르스크 전투가 끝나자 소련군은 쿠르스크 남부에서의 반격 작전인 '류만체프 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나 만슈타인은 소련군이 쿠르스크 남부에서는 대규모 공세에 나설 여력이 없을 거라는 낙관적인 판단과 미우스 강에서 전개되는 소련군의 기만 공세에 넘어가 버려 제4기갑군을 남쪽으로 이동시켜 돈바스 지역을 목표로 [[드니프로 강|드네프르 강]]과 미우스 강을 넘으려는 소련군을 막아 내도록 했다. 이를 통해 미우스 강 축선에서 시행된 [[로디온 말리놉스키]]가 이끄는 남서 전선군의 공세를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갑 예비대의 분산으로 인해 벨고로드-하르코프 축선에서 [[니콜라이 바투틴]]의 보로네시 전선군이 주축인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 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만슈타인은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불과 몇 달 전에 일으킨 하르코프의 기적]]을 다시 만들기 위해 벨고로드 일대에 소련군이 뚫어 놓은 돌파구를 막으려는 국지적 반격에 힘입어 보병사단 4개와 기갑 및 차량화보병사단 7개를 집결시켜 하르코프를 다시 역포위해 보려 했으나 상황은 당시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돌파구를 봉쇄하지 못한 독일군은 8월 13일에서 17일 사이에 후퇴 작전을 위해 철수를 감행해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마침내 제4차 하르코프 공방전 끝에 소련군은 하르코프를 해방시켰다. 하지만 제4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소련군은 전차 500여대와 기타 사단 몇 개를 손실했다. 그 해 9월부터 10월까지 독-소 양군은 드네프르 강을 사이에 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마침내 교두보를 확보하고 밀고 들어오는 보로네시 전선군을 상대로 만슈타인은 소련군이 만든 벨리키 부크린 돌출부를 차단하기 위해 제4기갑군을 투입했다. 이 기동으로 소련군의 공세를 저지하기는 했으나 원하는 작전 목표에는 닿지 못하고 말았다. 실망한 만슈타인은 제4기갑군 소속 제48기갑군단을 보로네시 전선군의 우익인 지토미르로 돌려 공세를 가했다. 기갑군단은 지토미르를 손쉽게 점령했지만 결국 브루실로프 일대에서 계속된 공세가 좌절되어 역시 결정적인 공세가 되지 못했다. 이후 10월과 11월에 만슈타인은 두 번 더 기술적으로 바투틴의 우익을 위협했지만 역시 결정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12월 19일에 만슈타인은 위협적인 교두보를 제거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감행했다. 코로스텐-키예프 간 철도선에서 만슈타인은 4개 군단으로 믿고 있던 일련의 소련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군대는 주공을 숨기기 위한 미끼였고 정작 주공은 브루실로프 지역에서 감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양쪽 다 소련군의 주공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바로 그 다음 날 [[크리스마스]]에 브루실로프에서 소련군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남부집단군의 방어선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한없이 무의미하긴 하지만, 교환비는 아직은 독일군이 조금 유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